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문단 편집) == 상세 == 현재 중국은 [[일당제]]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구색정당]]으로서 활동이 제약된 상황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1949-1957년)에는 중국공산당과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 나름 야당의 모습을 보였고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957년 [[반우파투쟁]] 때 일부 인사들이 숙청됐고 [[문화대혁명]] 때는 사실상 조직이 와해되어 활동을 중단하는 수모도 겪었다. [[문화대혁명]] 종결 후 조직을 복구했지만 중국 공산당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구색정당]]이긴 하지만 공개적으로 당원을 모집하고 각 [[성(행정구역)|성]]과 [[직할시]]에 지역조직을 갖추고 있다. 신문과 잡지 등의 정기간행물 발행 등 정당으로써 하는 일상적인 활동은 대부분 하고 있으며, 산하 당영기업인 단결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나 중국인민대표대회 회기 때에는 언론에 이미 폭로된 중국공산당이나 정부 몇몇 인사의 부패를 비판하곤 한다. 2010년 2월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 소속 단결출판사에서 [[장제스]]의 저작 《장개석가서일기문묵선록(蔣介石家書日記文墨選錄)》을 출판했는데 장제스의 저작이 대륙에서 출판된 것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최초다. 책 출판은 [[양안관계]] 개선을 위한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 측의 용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출판된 책 내용은 장제스 총통과 가족 간의 서신, 장제스 총통의 일기, 장제스 총통의 가족과 주변 인물들에 대한 회상, 장제스 총통의 시와 산문 등 5개장으로 구성돼 있다. [[대만]]으로 이동한 중국국민당과는 [[삼민주의]]를 이념으로 삼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상당히 다르다. 당의 이념으로 [[민주사회주의]][* 애초에 쑨원은 이쪽에 가까웠다. 중국의 반식민지적 현실을 고려해서 즉각적인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적 혁명은 현실적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지 그의 삼민주의는 기간 산업의 국유화를 직접 언급하는 등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사회주의 지향을 반대하지 않는 반제국주의적 민주주의 혁명 사상으로 보는 게 맞다. 문제는 이런 진보성을 계승할 후계자가 없었으니 당내 우파는 두말할 것도 없고 장제스는 [[4.12 상하이 쿠데타]]로 뒤통수를 후려갈겼고 [[왕징웨이]] 등 자칭 당내 좌파는 연공과 분공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결국 결렬했으며 왕징웨이는 한 술 더 떠서 장제스도 공개적으로는 부인한 파시즘을 수용하더니 끝내 [[한간]]이 되면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야 말았다. 이러니 국민당의 진보성과 혁명성에 감화되어 입당한 자들로서는 국민당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되자 선택의 여지가 공산당 지지 밖에 없었던 것. 중국혁명기를 다룬 팩션 소설을 보면 민혁 등 민주인사가 어째서 내전에서 공산당을 지지하게 되었는지 묘사가 잘 되어있다.]를 받아들였으며 [[중도좌파]] 정당임을 표방한다. 물론 이들은 분명하게 '''중국국민당을 계승한 후신 정당임을 표방하고 있다.''' 창당 때 당원 대부분이 [[중국국민당]] 당원이었다. [[쑹칭링]]만 해도 쑨원의 부인이자 [[중국국민당]]의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한 인물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만]]의 중국국민당도 인정[*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국민당을 정당으로서 인정한다는 증거는 양안 교류 시 당 대 당 교류 형태로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만에 위치한 중화민국은 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정당으로서의 중국국민당은 인정한다.]하고 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인) [[대만]]의 지방자치 정당'으로 규정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